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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박쥐: 내가 기억하는 미디액트

(출처: http://oldbat2.wordpress.com/2010/01/27/%EB%82%B4%EA%B0%80-%EA%B8%B0%EC%96%B5%ED%95%98%EB%8A%94-%EB%AF%B8%EB%94%94%EC%95%A1%ED%8A%B8/)

99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한겨레에서 운영했던 비디오제작교실의 수업을 들었을때 김명준 소장님(당시 노뉴단 대표)으로 부터 공적 미디어센터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이 얘길 듣고는 무슨 이런게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또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공적 미디어센터가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미디어센터가 지역에 몇군에 생겼고 또 그런걸 당연시 하는 분위기 이지만 당시만 해도 공적 미디어센터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미디어센터가 준비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002년 5월 광화문에 미디액트가 설립되었다.
당시 비만세(비디오로 만드는 세상 – 한겨레 비디오제작교실 수료생들의 후속모임)에서 김명준 소장님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미디액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집행부였던 소혜와 나 그리고 이름이 기억 나질 않는 어느 후배와 같이 액트로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그 인터뷰가 비만세 마직막 회지에 실렸다.)

아무튼 미디액트가 생기고 나서 나 역시 그곳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는 장비도 대여받고 편히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노동영화제 정기 상영회를 진행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매월 4주 토요일 한달에 한번씩 미디액트의 지원으로 노동영화제 정기 상영회를 가지며 노동영화제 지원단이 꾸려져 노동영화제 진행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미디액트는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2003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김명준 소장님의 권유로 부안에 내려가 촬영을 하면서 부안영화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김명준 소장님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며 처음으로 영상 활동가로서 활동 할 수 있겠끔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난 부안영화제와 부안 미디어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고 당시 액트에 소장님 외에는 친분이 없던 사람들을 차차 알게 되어 갔다. 교육실의 오정훈 실장, 홍교훈 그리고 정책실의 조동원, 이진행 창작지원실의 고영재실장, 김정석 등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덕분에 제 1회 부안영화제와 부안에서 처음 실시한 미디어교육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지난주 금요일 밤 이였다.
미디액트 교육실에서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작업을 정리하는게 있다.
한해 했던 작업을 CD나 DVD 로 만들어 배포 하는데… 그간 책으로만 만들었던 것을 . CD나 DVD로 만들어 배포하니 반응이 좋아 2004년 부터 매년 해오는 작업이다. 참고로 2004년 미디액트에서 처음 CD를 만들때 부터 지금 2010년까지 이 CD나 DVD 작업을 혼자 해왔다. 쉽게 말해 미디액트 교육실에서 만든 CD나 DVD는 내가 혼자 다 만들었다.

지난주 금요일 밤도 그러했다.  모선배는 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니 빨리 좀 부탁한다고… 시간적으로 촉박했으나 늘 그러했듯이 긴급하게 독촉을 하니 알았다고 했고.. 자료는 메신저로 보내준다는 거였다.
그리고 하루밤 자고 나서 밤세 메신저로 보내온 자료를 보니 중간에 끊겨 다시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였다. 분위기는 심찮치 않았다. 그 선배는 지금 현재 상황이 반전 되었다는 얘기였다. 지난주 볼일이 있어 소장님을 만난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액트에 관련된 얘기도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나름 꼼꼼히 준비도 했고 감사원 감사도 아무 탈없이 넘겼고 또 공모를 한다고 해도 특별히 모난곳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심사만 없다면 아무탈 없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 그러했다.
인디스페이스와 달리 감사에도 걸린게 없었고 – 물론 인디스페이스를 대상으로 한  표적 감사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는 아무탈 없으니 제대로 심사를 한다면 탈락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밝힐수 없지만 나름의 대비책도 있었던 것으로 알기 때문에 까탈스럽게 나오겠지만 그래도 미디액트는 지켜 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 토요일 선배의 말은 달랐다.
그 선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로 지금의 심정을 토로했고 나 역시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라는걸 직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그 선배로 부터 연락이 왔다.  공모 발표가 났다고..
바로 영진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해 보았다. 믿을수 없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어 버렸다.
바로 선배에게 전화를 했고 선배는 맥이 빠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선배와 난 어이 없는 웃음으로 DVD 작업관련에 대해 몇마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앞서 말했듯  2004년 부터 지금까지 매년 미디액트 교육실에서 만든 교육결과물 CD나  DVD를 만들어 왔다.
매년 많게는 4~5장 적게는 2~3장 씩 만들었다.
그 교육 결과물을 본다면 미디액트가 한해 어떻게 사업을 해왔고 그간의 성과가 어떠 했는지 한눈으로 볼 수 있다.
공부방 어린이들을 시작으로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성적 소수자, 노인, 군인, 농민, 여성농민, 교사 재교육 등 다양한 분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간의 사업을 해온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정말 공정하게 심사만 했다면 미디액트는 이번 공모 사업에서 탈락될 명분이 없다.
과연 심사위원들은 미디액트의 그간의 활동 사업을 검토 했는지 조차 의심 스럽다. 말을 들어 보니 그간의 사업 내용을 배체한체 새롭게 시작될 운영주체를 모집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이 공적 미디어센터와 영화아카데미의 차이점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 스럽다.

아무튼, 화요일 오후1시에 난 마지막 미디액트 교육실 DVD 작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메신저로 그 선배에게 보냈다. 밤을 세웠더니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해 그냥 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트위터에는 이번 미디어센터 선정 과정에 대한 불만의 글들이 넘쳐났다.  글의 요지는 그러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놈의 단체는 먼지 대체 아는것에 대해 알려달라는 글이였다. 나도 검색해 보니 이런 단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데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들인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한다.
그리고 정말 화가 많이 난다.